PMF를 ‘모두가 좋아하는 제품’으로 보면 자꾸 늦어집니다
초기 SaaS에서 PMF는 대중적 호감보다, 팀이 도로 떼어내기 힘든 업무 흐름에 박히는 순간에 더 가깝습니다.
PMF를 이야기할 때 자주 듣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정말 원하는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말이죠. 맞는 말입니다. 그런데 초기 SaaS에서는 이 문장이 너무 넓어서, 오히려 팀을 헷갈리게 만들 때가 많습니다.
저는 PMF를 볼 때 “모두가 원하나”보다 먼저 “이 팀이 이걸 빼면 오늘 일이 멈추나”를 봅니다. 좋아하는 도구는 많습니다. 하지만 버리기 어려운 업무 흐름은 많지 않습니다.
보통 PMF를 시장의 박수로 상상합니다. 저는 오히려 캘린더에 박힌 반복 업무, 매주 월요일 9시에 열리는 회의, 마감 3시간 전에 누군가 꼭 눌러야 하는 버튼 같은 데서 더 자주 봅니다.
(이 차이는 꽤 큽니다. 예쁜 데모를 본 고객의 “좋네요”와, 회계팀이 “이거 없으면 이번 달 정산 다시 엑셀로 해야 해요”라고 말하는 건 완전히 다른 종류의 신호거든요.)
사람들이 원한다는 말, 너무 자주 넓게 쓰입니다
정말 원하는 제품이 뭘까요.
초기 창업팀과 얘기해보면 대개 이렇게 답합니다. “누구나 써볼 수 있고요, 직관적이고요, 도입 장벽이 낮고요, AI가 자동으로 정리해주고요.” 듣기엔 다 좋습니다. 그런데 이런 설명만으로는 정작 누가, 언제, 왜 돈을 내는지가 잘 안 보입니다.
Marc Andreessen이 말한 PMF는 시장이 제품을 강하게 끌어당기는 상태에 가깝습니다. 저는 그 표현을 초기 SaaS에 가져오면, ‘많은 사람이 관심 보이는 상태’보다 ‘특정 팀이 자기 업무 안에 제품을 고정시키는 상태’로 읽는 편입니다.
왜냐하면 관심은 넓게 퍼지지만, 결제와 잔존은 좁게 박히기 때문입니다. 초기에는 이 좁음이 오히려 좋은 거죠.
제가 더 믿는 건 칭찬보다 반복입니다
예를 들어 5명짜리 초기 SaaS 팀이 영업 운영 자동화 툴을 만든다고 해보겠습니다. 3월에 랜딩페이지를 열었고, 2주 동안 420명이 가입합니다. 데모 신청도 61건 들어옵니다. 숫자만 보면 꽤 들뜰 수 있습니다.
그런데 4월에 실제로 남는 고객을 보면 전혀 다른 그림이 나옵니다. 61개 팀 중 39개는 첫 데모 후 소식이 끊기고, 14개는 “좋은데 지금은 우선순위가 아니다”라고 말합니다. 남은 8개 중 5개는 매주 화요일 오전 10시에 영업팀 리드 배분 회의를 하고, 그 직전에 엑셀 파일 3개를 합치느라 팀장이 40분씩 씁니다.
이 5개 팀은 반응이 비슷합니다. “AI 요약은 나중에 좋고요, 일단 세일즈포스랑 구글시트 값만 자동으로 맞춰주세요.” “리드 소유자만 자동 배정되면 바로 써볼게요.” “이번 분기 안에 이거 안 줄이면 SDR 한 명 더 뽑아야 합니다.”
저는 바로 여기서 PMF 냄새를 맡습니다. 많은 사람이 좋아한 기능이 아니라, 특정 반복 업무를 대체하는 기능에서요.
First Round의 PMF 자료도 결국 비슷한 방향을 가리킵니다. 창업자가 시장을 넓게 설명하는 순간보다, 고객의 구체적인 고통과 반복 행동이 선명해질 때 PMF 확률이 올라간다는 쪽이죠. 저도 현장에서는 그 해석이 더 맞다고 느낍니다.

이런 팀은 제품을 칭찬하지 않아도 남습니다. 대신 요구가 아주 구체적입니다. “CSV 업로드는 2분 안에 끝나야 해요.” “권한 로그가 남아야 보안팀 통과됩니다.” “월말 3일 동안은 에러 없이 돌아가야 합니다.”
듣다 보면 재미없어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초기 SaaS에서 돈은 대개 이런 지루한 반복 위에 올라옵니다.
PMF를 ‘발견’보다 ‘버릴 것 결정’으로 봐야 할 때가 있습니다
여기서 한 번 많이들 놓치는 지점이 나옵니다. PMF를 찾는다고 하면 보통 더 많은 기능, 더 넓은 시장, 더 많은 유입을 떠올립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반대인 경우가 많습니다.
초기 PMF는 추가보다 제거에 가깝습니다.
Rahul Vohra가 Superhuman 사례에서 유명하게 만든 40% 룰도 같은 결을 갖고 있습니다. “이 제품을 더 이상 못 쓰게 되면 매우 아쉽다”는 응답이 40%를 넘는지 보라는 이야기죠. 이 질문이 좋은 이유는 모두의 만족도를 묻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주 아쉬워할 사람을 찾는 데 집중하게 만듭니다.
초기 SaaS에서 이걸 업무 흐름으로 바꾸면 질문은 조금 달라집니다. “이 기능이 사라지면 누가 오늘 직접 손으로 다시 해야 하나.” “그때 몇 시간이 다시 드나.” “그 일을 미루면 매출, 정산, 승인, 보고 중 뭐가 막히나.” 이런 질문이 훨씬 세게 들어갑니다.
예를 들어 HR SaaS를 만드는 팀이 있다고 해보죠. 원래는 채용 공고 작성 AI, 인터뷰 요약, 온보딩 체크리스트, 평가 자동화까지 다 하려 합니다. 그런데 실제 유료 전환 6개를 뜯어보니 공통점은 하나뿐입니다. 인사 담당자가 매달 25일마다 계약직 80명의 근태 데이터를 엑셀 4개에서 합쳐 급여팀에 넘기는 일, 그걸 자동화한 기능만 계속 쓰인 겁니다.
이때 많은 팀이 아쉬워합니다. “우린 더 큰 비전을 갖고 시작했는데요.” 맞습니다. 저도 그 마음 압니다. 하지만 지금 돈을 내는 이유가 그 월말 흐름 하나라면, 먼저 거기에 박혀야 합니다. 비전은 나중에 넓혀도, 잔존은 먼저 좁혀야 생깁니다.
(이 구간에서 제품팀 표정이 살짝 굳는 걸 몇 번 봤습니다. 공들여 만든 기능보다 투박한 자동 업로드가 더 사랑받을 때가 있거든요. 그런데 대개 그게 더 비싼 문제입니다.)
그 업무 흐름이 진짜인지, 저는 이렇게 확인합니다
고객 인터뷰를 할 때 “이거 필요하세요?”라고 물으면 거의 소용이 없습니다. Rob Fitzpatrick의 The Mom Test가 강조하듯, 미래 의견보다 과거 행동을 물어야 하거든요. 저도 비슷하게 묻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문제를 처리한 게 언제였나요?” “그때 누가 몇 시간 썼나요?” “지금은 어떤 파일이나 툴을 오가나요?” “실수 나면 누가 혼나나요?” 이 질문을 던지면 업무 흐름이 실제인지, 머릿속 희망인지 금방 갈립니다.
답이 구체적이면 신호가 좋습니다. 예를 들어 “매주 금요일 5시에 CS 리더가 노션에서 티켓 내역 뽑고, 운영 매니저가 구글시트로 SLA 위반 건 계산하고, 대표가 월요일 아침 회의 전에 숫자 확인한다” 같은 답이 나오면, 이미 흐름이 존재하는 겁니다.
반대로 “있으면 좋죠”, “팀에 따라 다를 것 같아요”, “나중에 커지면 필요할 듯해요”가 반복되면 아직 업무에 박힌 제품은 아닐 가능성이 큽니다. 관심은 있지만, 긴급성은 없는 거죠.
초기 SaaS의 PMF 질문은 선호보다 복구 비용을 봐야 합니다.
그 제품을 빼면 사람이 다시 해야 하는 수작업이 생기는지, 그 수작업이 10분인지 4시간인지, 그리고 그 4시간이 매주 반복되는지가 더 중요합니다. 저는 이 숫자가 보일 때 훨씬 안심합니다.

‘모두를 위한 제품’이 왜 초기엔 위험한가
흔한 오해가 하나 있습니다. 업무 흐름에 박힌 제품을 만들자고 하면 너무 좁아질까 봐 걱정합니다. 시장이 작아 보이고, 투자자에게 덜 멋져 보일까 봐 불안해하죠.
그런데 a16z가 자주 강조하는 ICP 사고도 결국 같은 얘기입니다. 모두를 위한 제품은 메시지는 편하지만, 실제 전환은 약합니다. 초기엔 넓은 문제 정의보다, 좁고 반복되는 업무 하나가 더 강합니다.
가령 “중소기업을 위한 AI 업무 비서”보다 “직원 50~200명 제조업체의 월말 발주 승인 누락을 막는 워크플로우”가 훨씬 작아 보입니다. 하지만 후자가 영업도 쉽고, 데모도 선명하고, 도입 후 잔존도 설명이 됩니다.
초기 SaaS가 자주 망가지는 지점도 여기입니다. 고객 20명을 만나서 20가지 요청을 다 받으면, 팀은 착한데 제품은 흐려집니다. 결국 누구의 월요일도 책임지지 못하는 툴이 되죠.
저는 오히려 첫 10개 유료 고객의 캘린더를 겹쳐보는 편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같은 요일, 같은 마감, 같은 승인자, 같은 엑셀 지옥이 반복되면 그게 시장의 시작입니다.
초기 SaaS에서 PMF가 보일 때 나오는 말들
좋은 PMF 신호는 감탄사보다 생활어에 가깝습니다.
“이거 진짜 혁신적이네요”보다 “이번 달부터 이 파일 안 만들어도 되겠네요”가 낫습니다. “우리 팀 전체가 좋아할 것 같아요”보다 “운영 매니저 계정 3개만 먼저 열어주세요”가 낫고요.
제가 좋아하는 신호는 이런 것들입니다. 고객이 기능이 아니라 순서를 말할 때, 한 명이 아니라 역할을 지정할 때, 테스트가 아니라 운영 전환 날짜를 먼저 잡을 때입니다. 예를 들어 “6월 1일부터 회계팀까지 붙일게요” 같은 말이 나오면 공기가 달라집니다.
반대로 위험한 신호도 분명합니다. 데모는 길게 보는데 실제 데이터 연결은 미루고, 팀 채팅방 초대는 안 하고, “대표님 설득되면요”가 몇 주째 반복되는 경우입니다. 이건 제품 호감은 있어도 흐름 전환은 안 된 상태일 수 있습니다.
초기엔 대시보드보다 현장 언어가 더 정확할 때가 많습니다. 숫자는 나중에 따라오지만, 먼저 바뀌는 건 사람들의 문장입니다.
제가 PMF를 볼 때 마지막으로 확인하는 것
돈을 내는지 봅니다. 하지만 그것만 보진 않습니다.
YC 쪽에서 자주 말하듯, 지불 의향은 강한 검증입니다. 다만 초기 SaaS에서는 첫 결제가 할인, 파일럿, 대표 친분으로도 나올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결제 뒤를 더 봅니다. 실제 데이터가 들어왔는지, 담당자가 팀원을 초대했는지, 기존 엑셀이나 슬랙 루틴이 끊겼는지요.
월 49만 원을 결제한 고객보다, 매주 3번 로그인하고 2개 팀을 붙이고 기존 수작업을 없앤 고객이 더 강한 신호일 때가 있습니다. 돈은 시작일 수 있어도, 업무 흐름의 치환이 있어야 PMF 쪽으로 갑니다.
그래서 저는 초기에 이런 문장을 팀 안에서 자주 써야 한다고 봅니다. “우리는 누구에게 사랑받을 것인가”보다 “누구의 어떤 반복 업무를 없앨 것인가.” 이 질문이 선명해지면 로드맵도, 세일즈도, 가격도 같이 정리됩니다.
PMF는 모두가 원한다고 말하는 제품이 아니라, 몇 팀이 도저히 다시 예전 방식으로 돌아가기 싫어하는 제품에 더 가깝습니다. 초기 SaaS라면 그 불편한 복귀 비용이 보이는 순간부터, 비로소 시장이 열리기 시작하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