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은 시장이 아니라 사람에서 먼저 금이 갑니다
시장 실패가 더 유명해 보여도, 실제 붕괴는 공동창업자 사이의 어긋남에서 먼저 시작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공동창업자 문제는 왜 늘 나중에 말해질까요
스타트업이 망한 뒤 회고를 읽어보면 겉으로 드러난 이유는 대개 비슷합니다. 자금이 떨어졌고, 시장이 작았고, 타이밍이 안 맞았고, 경쟁이 너무 셌다고 하죠.
그런데 저는 그 문장들 앞에 빠진 한 줄이 있다고 봅니다. 그 결론에 도달하기 전에, 같이 버티던 두세 사람이 이미 같은 회사를 다른 방향으로 보고 있었던 겁니다.
CB Insights의 스타트업 실패 원인 정리와 실패 기업 포스트모템들을 보면, 표면 이유는 시장·자금·비즈니스 모델로 정리되지만 실제 붕괴 과정에서는 팀 내부 균열이 반복해서 등장합니다. 숫자로 보고 싶어 시작한 자료였는데, 읽다 보면 오히려 사람 얘기가 더 많이 남습니다. (이런 자료는 냉정해야 하는데, 이상하게 읽고 나면 더 인간적으로 보이더라고요.)
보통은 시장이 먼저고 팀은 그다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현장에서는 반대로 무너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시장이 틀렸다는 판단조차, 결국 누가 얼마나 더 버틸지에 대한 팀의 합의가 깨질 때 내려지거든요.
CB Insights 데이터가 보여주는 건 실패 원인의 순위보다 실패의 순서입니다
많이 인용되는 CB Insights의 Why Startups Fail 자료에서는 실패 이유 상위권에 시장 부재, 자금 고갈, 팀 이슈, 경쟁, 가격 문제 같은 항목이 나옵니다. 여기서 많은 분이 “결국 시장이 제일 중요하네”라고 받아들입니다.
그 해석이 아주 틀린 건 아닙니다. 다만 저는 순위표를 그대로 읽으면 중요한 걸 놓친다고 봅니다.
예를 들어 공동창업자 2명, 직원 7명인 B2B SaaS 팀을 떠올려보겠습니다. 첫 8개월 동안은 월 매출이 0원에서 1,200만 원까지 올라왔지만, 엔터프라이즈로 갈지 SMB로 갈지 합의가 안 됩니다. CEO는 6개월 안에 큰 계약 3건을 원하고, CTO는 제품 안정화 없이 그 계약을 받으면 팀이 무너진다고 봅니다.
처음엔 이게 전략 토론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넉 달쯤 지나면 채용 공고 문구가 바뀌고, 세일즈 데모에서 약속하는 기능이 달라지고, 개발 스프린트가 매번 뒤집힙니다. 그다음에야 시장 반응이 흔들리기 시작하죠.
실패 원인은 하나로 적히지만, 실패 과정은 연쇄적입니다.
공동창업자 불일치는 보고서에서 독립 항목 하나로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론 채용 실패, 제품 우선순위 혼선, 자금 소진 가속, 고객 신뢰 하락으로 번집니다. 팀 이슈가 따로 있는 게 아니라 다른 실패 원인들의 증폭기가 되는 셈입니다.

그래서 저는 공동창업자 갈등을 “한 가지 리스크”로 보지 않습니다. 오히려 다른 모든 리스크를 빠르게 현실로 만드는 조건에 가깝다고 봅니다.
시장 부재보다 더 무서운 건 같은 고객을 보고도 다른 회사를 떠올리는 상태입니다
정말 위험한 순간은 둘이 싸우는 순간이 아닙니다. 회의가 조용해지는 순간입니다.
같은 고객 인터뷰를 하고도 서로 완전히 다른 다음 행동을 적어오는 상태, 저는 그때가 더 무섭습니다.
가령 채용 운영 툴을 만드는 3인 창업팀이 있다고 해보겠습니다. 월요일에 HR 리드 5명을 인터뷰했더니, 3명은 “지원자 정리 자동화”를 원했고 2명은 “현업 면접관 피드백 회수”를 더 아파했습니다. 여기서 한 공동창업자는 자동화 엔진을 만들자고 하고, 다른 공동창업자는 협업 워크플로우가 먼저라고 주장합니다.
문제는 의견 차이 자체가 아닙니다. 그 차이를 결정하는 기준이 없다는 겁니다. 누가 더 큰 고객군인지, 누가 더 자주 문제를 겪는지, 누가 당장 돈을 낼지에 대한 합의가 없으면 인터뷰를 20번 더 해도 같은 자리예요.
Rob Fitzpatrick의 The Mom Test가 말하듯, 좋은 인터뷰는 의견보다 과거 행동을 봐야 합니다. 공동창업자 사이도 비슷합니다. “이 방향이 맞는 것 같아”가 아니라 “지난 30일 동안 어떤 고객이 몇 번 같은 문제로 다시 왔는가”로 맞춰야 하죠.
이 기준이 없으면 시장 검증이 안 되는 게 아니라, 팀 검증이 안 됩니다. 밖에서 얻은 데이터가 안에서 번역되지 못하는 상태니까요.
공동창업자 불일치는 감정 문제가 아니라 운영 문제로 먼저 드러납니다
한 번은 이런 팀을 본 적이 있습니다. 공동창업자 2명이 AI 문서 분석 제품을 만들고 있었는데, 겉으로는 사이가 나쁘지 않았습니다. 주간 회의도 했고, 투자자 업데이트도 제때 보냈고, 고객 데모도 계속 잡았죠.
그런데 6주 동안 캘린더를 펼쳐보니 이상한 패턴이 보였습니다. CEO는 매주 화·목마다 잠재 고객 6~8명과 미팅을 넣었고, CTO는 같은 시간대에 기존 고객 장애 대응과 모델 정확도 튜닝에 거의 전부를 썼습니다.
이 회사의 문제는 “대화를 안 한다”가 아니었습니다. 이미 각자 다른 회사를 운영하고 있었다는 데 있었습니다. 한쪽은 영업 조직이 붙는 회사를 만들고 있었고, 다른 한쪽은 정확도 95%를 넘겨야 팔 수 있는 제품 회사를 만들고 있었죠.
두 사람이 진짜 충돌한 건 감정이 폭발해서가 아니라, 3번째 엔터프라이즈 고객이 보안 기능과 커스텀 모델을 동시에 요구했을 때였습니다. 한 명은 “이 계약은 무조건 받아야 한다”고 했고, 다른 한 명은 “이걸 받으면 로드맵이 4개월 밀린다”고 했습니다.
공동창업자 불일치는 슬랙 메시지에서 시작되지 않습니다. 일정, 채용, 로드맵, 데모 약속에서 먼저 드러납니다.
그래서 초기에 봐야 할 건 관계의 온도보다 운영의 방향입니다. 서로 예의 바르고 사이가 좋아도, 회사가 향하는 축이 다르면 결국 같은 문제를 두고 다른 비용을 지불하게 됩니다.

흔한 오해가 하나 있습니다. 역할 분담만 잘하면 괜찮다는 생각입니다
“한 명은 비즈니스, 한 명은 제품. 이렇게 나누면 되지 않나요?”라는 말을 정말 자주 듣습니다. 물론 역할 분담은 필요합니다. 다만 그걸 해법으로만 보면 위험합니다.
왜냐하면 역할은 나눌 수 있어도, 판단 기준은 나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월 현금 잔고가 8개월 남은 팀이 있다고 해보죠. CEO는 매출을 만들기 위해 SI성 요청도 일부 받아야 한다고 봅니다. CTO는 그 요청이 쌓이면 제품이 영영 일반화되지 못한다고 봅니다. 둘 다 맞는 말입니다.
이때 필요한 건 “누가 최종 결정권자인가”보다 먼저 “우리는 어떤 조건에서 예외를 허용하는가”입니다. 계약금이 3,000만 원 이상이면 받는지, 커스텀 개발은 전체 스프린트의 20%를 넘기지 않는지, 같은 요청이 3개 고객사에서 반복될 때만 제품화하는지 같은 기준 말입니다.
Paul Graham이 초기에 스케일 안 되는 일을 하라고 했을 때, 그 말은 무작정 다 해주라는 뜻이 아니었습니다. 무엇을 수동으로 감당할지, 무엇은 절대 안 할지를 팀이 같이 정해야 한다는 얘기에 더 가깝다고 저는 받아들입니다.
공동창업자 사이가 틀어지는 팀을 보면, 놀랍게도 가치관이 완전히 달라서라기보다 예외를 처리하는 규칙이 없어서 지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매번 처음부터 설득해야 하니까요. (이건 회의가 길어져서 힘든 게 아닙니다. 같은 회의를 세 번째 다시 하는 게 사람을 닳게 만들어요.)
그럼 초기에 뭘 맞춰야 하냐고 물으면, 저는 세 가지부터 봅니다
1. 어떤 고객을 버릴지 먼저 합의돼 있나요
대부분은 “우리 고객이 누구인가”를 먼저 정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우리가 지금 안 받을 고객은 누구인가”가 더 빨리 팀을 정렬시킵니다.
예를 들어 10인 이하 스타트업만 받기로 했는데, 300명 규모 기업이 커스텀 계약을 제안합니다. 현금은 달콤하죠. 하지만 이때 두 공동창업자가 같은 답을 못 내리면, 이후 모든 우선순위가 흔들립니다.
2. 돈이 급할 때도 안 바꿀 원칙이 있나요
현금이 5개월 남았을 때와 15개월 남았을 때, 사람은 다른 말을 합니다. 그래서 여유 있을 때 정한 원칙이 중요합니다. 주 2회 이상 반복되는 고객 문제만 제품화한다든지, 특정 업종 외엔 온보딩을 자동화하기 전까지 받지 않는다든지요.
이게 없으면 위기 때마다 더 큰 고객, 더 큰 요구, 더 급한 매출 쪽으로 쏠립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공동창업자 갈등은 철학이 아니라 체력 싸움이 됩니다.
3. 서로를 어떻게 평가할지 합의돼 있나요
한 명은 “계약 4건 따왔는데 왜 인정받지 못하지?”라고 느끼고, 다른 한 명은 “장애 3번 막았는데 왜 아무도 모르지?”라고 느낍니다. 평가 기준이 다르면 신뢰가 먼저 닳습니다.
초기엔 KPI가 단순해야 합니다. 예컨대 이번 분기 목표를 '유료 고객 5곳 확보'보다 '동일 ICP 기준 주간 활성 사용 8주 연속 유지'처럼 설정하는 편이 낫습니다. 같은 숫자를 보지 않으면 같은 회사를 운영하기 어렵습니다.
창업팀이 무너지는 순간은 대개 아주 실무적으로 찾아옵니다
거창한 배신이나 극적인 사건이 먼저 찾아오는 게 아닙니다. 누가 채용 최종 면접을 미루고, 누가 고객사에 약속한 날짜를 혼자 바꾸고, 누가 투자자 미팅에서 다른 스토리를 말하는 식으로 옵니다.
그리고 그 작은 어긋남이 쌓이면, 어느 날부터 회사 안에 두 개의 진실이 생깁니다. 하나는 “우리는 성장 중”이라는 진실이고, 다른 하나는 “이 속도로 가면 제품이 무너진다”는 진실입니다.
둘 다 사실일 수 있습니다. 문제는 둘을 동시에 붙잡고 갈 방법을 공동창업자끼리 못 정하면, 시장보다 먼저 팀이 버티지 못한다는 데 있습니다.
CB Insights의 실패 데이터가 시장과 자금을 크게 보여준다고 해도, 저는 그 숫자 뒤에서 더 먼저 봐야 할 항목이 창업팀이라고 생각합니다. 시장은 틀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같이 틀릴 수 없는 팀은 생각보다 훨씬 빨리 끝납니다.
지금 공동창업자와 주간 회의를 하고 있다면, 제품 로드맵보다 먼저 한 번 봐야 할 건 서로의 답이 아니라 서로의 기준입니다. 같은 고객을 보고 같은 우선순위를 떠올리는지, 아니면 이미 다른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지. 스타트업은 대개 시장에서 죽었다고 기록되지만, 실제로는 그보다 앞서 창업팀 안에서 먼저 멈추는 경우가 많습니다.
공동창업자 정렬이나 창업팀 운영 원칙에 관심 있는 분들과 이 주제를 계속 나눠보고 싶습니다. 너무 늦기 전에 팀의 기준부터 맞추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